[주일설교, 2022.08.14, 김진영 담임목사] 다윗 앞에 놓인 두 가지 길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2년 8월 14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다윗 앞에 놓인 두 가지 길 |
| 성경 본문 | 사무엘하 11장 14-25절 |
| 함께 읽은 말씀 | 레위기 20:10 / 사무엘하 12:10 (그 밖에 초대교회 문서 「열두 사도의 가르침」 첫머리를 함께 읽음) |
| 영상 | https://youtu.be/eLr6aqQLxP0 (설교 약 38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성경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이 닿게"→디다케, "유압·요 한번"→요압, "바 3·빠세 바"→밧세바, "죽으매 길"→죽음의 길, "회계"→회개)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이 설교는 사무엘하의 다윗 이야기를 이어서 전하는 연속 설교의 한 편입니다. 설교 중에 "우리는 이전에 요압이 …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했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앞선 설교 내용을 되짚으십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기초 | 높은 건물일수록 기초를 깊이 판다. 신앙도 "믿음이 무엇인가, 구원받은 신자의 삶이 무엇인가"라는 기초를 깊이 알아야 한다. |
| ② 초대교회 | 「열두 사도의 가르침」(디다케)의 첫 문장 — 두 가지 길, 곧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다. |
| ③ 판별 | 예배·성경·기도라는 형식이 아니라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로 안다. 나무는 열매로 안다. |
| ④ 다윗의 선택 | 간음한 다윗 앞의 두 길 — 우리아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길, 죄를 가리려고 살인하는 길. 다윗은 죽음의 길을 택했다. |
| ⑤ 회개에 대한 오해 |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사탄의 속임이다. 회개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
| ⑥ 요압의 선택 | 왕에게 간언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으나, 왕의 약점을 쥐고 출세하는 길을 택했다. |
| ⑦ 제3의 길은 없다 | 어느 길을 걸을지는 내가 결정한다. "저 사람 때문에"가 아니다. |
| ⑧ 죄는 커진다 | 숨기려 하면 눈덩이처럼 커진다. 우리아만이 아니라 충성된 군인들이 함께 죽었다. |
| ⑨ 두 개의 눈 | 다윗: "이 일을 악하게 보지 마라"(25절). 하나님: 그 일을 악하게 보셨다(27절). |
| ⑩ 같은 사람 | 원수의 자손을 살리고 회복시킨 그 다윗과 지금의 다윗이 같은 사람이다. |
| ⑪ 원인 | 하나님을 업신여김(삼하 12:10) — 결정할 때 하나님을 고려 사항에 넣지 않는 것. |
| ⑫ 예화 | 24억 원짜리 10센트 동전을 들고 가는 사람의 마음에는 동전밖에 없다. |
| ⑬ 적용 | 하루를 말씀과 기도로 시작하는가. 성숙한 신자는 "다음 주일 하나님 앞에 선다"는 의식으로 한 주를 산다. |
| ⑭ 결론 | 에녹은 300년을 결심한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걷기로 결심했다. |
3. 결론 — 300년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 에녹이 한 가장 큰 일이 무엇인가.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에녹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300년을 동행하기로 결심하셨습니까?'"라고 하셨다. 그러면 에녹은 놀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심한 적이 없습니다."
- 창세기의 말씀대로 에녹은 딱 한 가지를 결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걷기 원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 제가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어떤 상황이 있든지 하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시겠습니다."
- 동전을 옮기던 사람이 이동하는 내내 24억 원을 주고 산 10센트짜리 동전을 늘 생각했듯이, 오늘 하루를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실까,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판단하실까" 하는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루를 살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300년을 살게 된 것이다.
- 시험에 넘어가지 말라. "네가 이렇게 살면, 이런 결정을 하면 1~2년도 안 돼서 죽는다. 이쪽 결정을 하면 5년, 10년, 100년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속지 말라.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음 주에 불러 가실지 10년 뒤에 불러 가실지 알 수 없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과 함께 눈을 뜨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가라. 내가 하는 생각, 내가 하는 말, 내가 내리는 결정을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으로 살펴보신다. "내가 보기에 참 의롭다.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라는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받도록, 하루하루 말씀의 자리, 기도의 자리,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은혜를 구하라.
- 다음 주일 예배드리러 올 때까지 이번 한 주간을 그렇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하시며 말씀을 맺으셨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 끝에 번호를 붙여 기도 제목을 따로 나누어 주시지는 않았고, 다음과 같이 기도의 내용을 일러 주신 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고 회중 기도로 이끄셨다.
- 생명의 길을 걷기를 — "하나님, 우리 앞에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살리며 살아가는 길인데 이 길을 걷기를 소원합니다."
- 말씀과 기도의 자리, 이웃을 살리는 자리에 서기를 —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자리에, 그리하여 이웃을 살리는 자리에 서서 이번 한 주간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다음 주일을 의식하며 살기를 — "다음 주일날 이 예배의 자리,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항상 의식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십시오."
(이어진 회중 기도 시간은 음악과 겹쳐 자막이 거의 알아볼 수 없게 깨져 있어 옮기지 않았다.)
마무리 기도: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생명의 길로 불러 주시고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은혜와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이번 한 주간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세상의 욕심과 압력과 유혹 속에서 마음이 타협하거나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 주시기를, 어느 곳에 있더라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하루하루 살면서 다음 주일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사는 한 주간이 되기를 구하는 기도.
5. 성경 본문 (사무엘하 11:14-25)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설교에서 본문 바로 뒤의 27절까지 다루셨으므로 26-27절도 덧붙였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11:14 | 아침이 되자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냈다. |
| 11:15 |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아를 싸움이 가장 맹렬한 곳 맨 앞에 세우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 죽게 하라. |
| 11:16 |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줄 아는 곳에 우리아를 두었다. |
| 11:17 |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싸울 때 다윗의 부하 가운데 몇 사람이 쓰러졌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다. |
| 11:18-21 | 요압이 전령을 보내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하게 하면서 이렇게 일러 두었다. 보고를 마친 뒤 왕이 노하여 "왜 성에 그렇게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성 위에서 쏠 줄을 몰랐느냐.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죽인 것이 누구냐. 한 여인이 성 위에서 맷돌 위짝을 던져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않았느냐" 하시거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하고 말하라. |
| 11:22-24 |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보고했다. 적이 우세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성문 어귀까지 밀어붙였는데,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쏘아 왕의 부하 가운데 몇 사람이 죽었고 우리아도 죽었다고 했다. |
| 11:25 | 다윗이 전령에게 말했다. 요압에게 전하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는 법이다. 그 성을 더욱 힘써 쳐서 함락시키라. 그렇게 요압을 담대하게 하라. |
| (11:26-27) | 우리아의 아내가 남편의 죽음을 듣고 슬퍼했다. 장례를 마치자 다윗이 그를 왕궁으로 데려와 아내로 삼았고 그가 아들을 낳았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신앙의 기초를 깊이 파야 한다
신앙생활을 할 때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정확하고 깊게 알고 있으면 큰 유익이 된다.
- 집을 지을 때 그 건물을 몇 층짜리로 지으려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기초를 어느 정도로 파고 있는가를 보면 된다.
- 단층이나 1~2층 집을 지을 때는 그렇게 깊이 팔 필요가 없다. 그러나 100층, 200층짜리 큰 빌딩을 지으려 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기초를 깊고 튼튼하게 파는 것이다.
- 신앙생활도 똑같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신자의 삶이 무엇입니까?"
"예수 천당 불신 지옥"만으로는 부족하다
- 한국 교회의 옛 표현대로 "구원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맞는 말씀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가고, 믿지 않고 죄 가운데 살면 하나님의 지옥 심판을 받는다.
- 그러나 그것은 복음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구원의 은혜 안에 살아가는 것을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만 알고 있어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풍성하게 알 수 없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 교회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교회사에서 늘 해 온 일이 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복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신자의 삶이 무엇인지를 초대교회 때 풍성하게 가르쳐 주셨는데, 200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가 그 복음의 가르침에서 떠나 있지는 않은지, 믿음과 구원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종교개혁도 그런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다.
- 그래서 오늘 다윗의 사건과 관련해서 초대교회로 돌아가 보자고 하셨다.
6-2. 「열두 사도의 가르침」 — 두 가지 길
주후(AD) 100년경 초대교회에 「열두 사도의 가르침」이라는 문서가 있었다. 디다케라고 부른다.
- 주후 100년이면 신약 성경이 아직 쓰이고 있을 때다.
- 교회가 열두 사도의 가르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사도 요한 같은 경우에는 아직 살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시기다.
- 그때에 "열두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믿음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신자의 삶은 이것입니다"라고 정리한 것이 디다케다.
이 문서의 제일 앞부분, 처음에 나오는 문장을 회중과 함께 읽었다. 초대교회는 구원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이렇게 가르쳤다.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길인데, 두 길의 차이가 큽니다. 생명의 길은 이렇습니다. 첫째로 당신을 만드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둘째로 당신 이웃을 당신처럼 사랑하십시오. 또 무슨 일이든지 당신에게 닥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이거든 당신도 남에게 하지 마십시오. 죽음의 길은 이렇습니다. 이 길은 악하고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인, 간음, 정욕, 음행, 도둑질, 질투, 교만, 자만, 두려워하지 않음입니다. 선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자들, 의로운 심판에 가담하지 않는 자들, 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을 위해서 밤새우는 자들, 이 모든 자들을 멀리하십시오."
(자막이 깨진 낱말은 문맥에 맞추어 다듬었다. 8장 참조.)
이 가르침의 뜻
- 초대교회는 "구원받았다는 것은 그냥 이신칭의 교리를 믿는 것이다"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훨씬 생생하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길을 걷는 것이다.
-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생명의 길이 있다. 그 길이 좁고 협착할지라도 그 길을 걸을 때 우리가 생명과 구원 안에 있다. 다른 길은 죽음의 길이다.
-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있다. 주일날 예배를 드렸다. 성경을 읽고 기도 생활을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삶,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질투와 교만과 자랑과 간음과 살인을 행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생명의 길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 외적인 종교 형식은 갖출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신자인지 아닌지는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로 안다. "나무는 무엇으로 압니까? 열매로 압니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길을 걷는다. 죽음의 길을 걷는 사람은 생명에서 떠나 있다.
"지금 다윗은 생명의 길에 있습니까, 죽음의 길에 있습니까?"
다윗은 죽음의 길에 있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와 교제에서 떠나 있다. 스스로 떠나 있다.
6-3. 믿음으로 산다는 것 — 끊임없는 선택 속에서 생명의 길을 떠나지 않는 것
-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는 선택의 순간 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항상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사탄과 세상은 우리가 이 생명의 길에서 떨어지기를, 가다가 중간에 멈추기를, 가다가 배반하기를 바라며 우리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우는 사자와 같이 공격하고 삼키려 할 것이다.
- 우리는 가다가 넘어지고 자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회개하며 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생명의 길로 이끄시는 신실하신 분이다.
-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끝까지 싸우라. "결국은 그 사람이 돌밭이었다, 결국은 그 사람이 가시밭이었다" 하고 비참하게 끝나지 말라. 여러 가지 부족함과 실수가 있어도 "결국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옥토와 같이 회개의 열매를 맺고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갔다"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초대교회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복음이고 믿음의 삶이다.
이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라는 말씀을 앞에 놓고, 다윗과 요압이, 그리고 우리가 생명의 길 가운데 있는지 생명의 길을 떠나 죽음의 길에 있는지 돌아보자고 하셨다.
6-4. 다윗 앞의 두 가지 길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려 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인가. 레위기 20장 10절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 (회중과 함께 낭독)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 20:10)
- 다윗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간음을 했다. 보통 사람과 간음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충성되게 세운 30명의 장군, 30명의 대장 가운데 한 사람인 우리아의 아내인 줄 알면서 간음을 했다. 목사님은 이것을 "강간을 했다"고 표현하셨다.
- 하나님의 율법으로 볼 때 아무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 밧세바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니 빨리 가려야 한다.
그때 다윗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었다.
| 생명의 길 | 죽음의 길 | |
|---|---|---|
| 무엇을 하는가 |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한다. "정말로 미안하다. 내가 죄를 지었다. 내가 너의 아내를 범했다. 용서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백하고 회개한다. "하나님, 제가 죄를 범했습니다. 뉘우치고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회복시켜 주십시오." | 죄를 가리려고 우리아를 죽인다. |
| 그 뜻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상처받은 이웃 곧 밧세바와 우리아를 살리는 길이다. | 살인의 길이다. |
-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면 다윗은 생명의 길을 걸으면 된다. 그러나 다윗은 이 선택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있기 때문에 생명의 길을 걷지 않는다. 죽음의 길, 살인의 길을 택한다.
- 우리아가 말을 듣지 않았다. 여러 번 설득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아의 손에 우리아를 죽이라는 명령을 들려 보낸다.
- 다윗의 지금 상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떠나 있다. 죄를 회개하지 않고 이 죄 가운데 죽는다면, 에스겔의 말씀대로 다윗이 그때까지 해 온 모든 선한 일, 믿음으로 살아온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나님은 선언하신다. 다윗은 이 죄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6-5. 회개에 대한 두 가지 오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고 하셨다.
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다" — 사탄의 속임이다
- 물론 회개는 내가 한다. 내가 해야 한다.
- 그러나 신앙생활을 곰곰이 돌아보면, 이것이 죄인 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다.
-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회개의 은혜를 간절히 구해야 한다.
② "내가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무조건 용서해 주셔야 한다" — 그런 법은 없다
- 내가 아무리 간절히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자복할지라도, 그 죄를 보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주시는 은혜다.
어쨌든 다윗은 생명의 길에서 완전히 떠나 있다.
6-6. 요압 앞의 두 가지 길
우리아를 죽이라는 명령을 요압이 받았다. 요압 앞에도 두 가지 길이 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요압
- 우리는 이전에 요압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했는지 알고 있다.
- 아람과 암몬의 협공을 받아 죽게 되었을 때 요압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던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도시들을 기억해 주시고 도와주십시오."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던 모습이다.
- 그 요압 앞에 감당하기 어려운 시험과 압력이 들어왔다. 왕이 직접 명령한 것이다. "우리아를 죽여라."
요압은 왜 묻지 않았는가
- 성경을 보면 요압은 다윗의 명령에 대해 묻지 않는다. 일개 병사도 아니고 30명의 대장 가운데 한 명을 이유 없이 죽이라고 하는데 달리 묻지 않는다.
- 많은 주석 학자가 말하고, 우리가 상식으로도 알 수 있다. 요압은 다윗이 왜 우리아를 죽이려 하는지 다 알고 있다.
-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것은 "다 알려져 있는 비밀"이다. 관계된 사람이 많다. 최고 군사령관에게는 예루살렘의 정보통이 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다, 밧세바가 임신했다, 그것을 숨기려고 우리아를 회유했는데 경건하고 충성된 우리아가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다윗이 곤란해지니 할 수 없이 우리아를 죽이라고 명했다. 요압은 이것을 다 알고 있다.
요압의 두 길
| 생명의 길 | 죽음의 길 | |
|---|---|---|
| 내용 |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명의 길을 따라 판단하고 결정하는 길 | 왕이요 자기의 삼촌인 다윗에게 잘 보이면 앞으로 자기 지위와 인생이 형통하고 평탄해질 것이므로, 다윗이 내리는 불법하고 불의한 명령에 "개처럼 순종하는" 길 |
- 요압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람을 살리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요압이라면 다윗에게 항의할 수 있고 간언할 수 있다. 직접 찾아가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왕이시여, 삼촌, 정신을 차리십시오. 지금 삼촌이 죽이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아입니다."
-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 왕을 찾아가 "아버지, 정신을 차리십시오. 왜 다윗을 죽이려 하십니까. 의로운 자를 죽여서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려 하십니까" 했듯이, 요압도 다윗을 찾아가 말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가 다 압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냥 잘못을 인정하십시오. 죄를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십시오."
- 그렇게 말하는 것이 생명의 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살리는 길이다. 요압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충분한 자리와 관계와 힘이 있는 사람이다.
- 죽음의 길은 이런 계산이다. "삼촌 왕의 부당하고 불법한 명령이지만, 한 사람만 딱 죽이면 앞으로 왕이 나를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한다. 내가 왕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을 쥐게 된다. 이번에 왕을 기쁘게 하면 내 인생이 좋아질 것이다." 요압도 이런 사탄의 유혹과 욕심에 분명히 넘어갔을 것이다.
6-7. 제3의 길은 없다 — 누가 결정하는가
우리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할 때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 길이 있다.
- 제3의 길은 없다. 생명의 길도 아니고 죽음의 길도 아닌, 생명과 죽음이 섞여 있는 길은 없다.
- 생명의 길, 빛 가운데 걸어가는 길에는 어둠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어둠과 빛이 섞여 있는 길을 걷고 있다면 그 길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라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말씀이다.
"내가 생명의 길을 걸을지 죽음의 길을 걸을지 누가 결정합니까? 내가 결정합니다."
- "누가 나를 유혹했어요. 사탄이 나를 유혹했어요." 맞다. 유혹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범한다.
- "저 사람이 나를 미워했어요. 저 사람이 나를 부당하게 대했어요." 맞다. 그 결과 저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생명의 길을 걸을지, 저 사람이 나를 부당하게 대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저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살아갈지 누가 결정하는가. 내가 결정한다.
- "저 사람 때문에 했다"가 아니다. 저 사람이 원인이 되고, 마귀가 원인이 되고, 여러 가지가 원인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생명의 길을 걸을지, 마귀의 길 곧 죽음의 길을 걸을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 요압도 자기가 결정했다. 다윗도 자기가 결정했다.
6-8. 숨기려는 죄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다윗은 요압에게 "우리아만 죽여라"고 했다.
- 죄 가운데 빨리 회개하지 않고 그 죄를 계속 품고 지내지 않는가. 그 죄를 숨기려고 애쓰지 않는가.
- 만고불변의 법칙이 있다. 죄는 숨기고 감추려 하면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게 되어 있다.
- 하나님께서 죄를 지었다고 깨닫게 해 주셨을 때, 그 순간 바로 적극적으로 회개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고 믿음의 길이다. 자꾸 숨기려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요압은 우리아만 죽였는가
- 그렇지 않다. 본문을 읽어 보면 우리아와, 우리아와 함께 있던 충성된 군인들을 다 함께 죽인다.
- 요압은 죽음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다윗 왕의 불법하고 악한 명령에 순종하기로 한 뒤 고민을 했다. 장군이니 뻔히 안다. 우리아 하나만 죽으면 "일부러 우리아만 죽였다"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머리를 쓴 것이다.
- 16절에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줄 아는 곳에 우리아를 두었다. 암몬 군사 가운데 최정예 부대, 특수부대, 제일 용감한 군인들이 지키는 곳을 요압은 안다. 그곳에 우리아를 세웠다.
- 다른 사람은 다 빼고 우리아만 죽게 하면 분명히 의심을 받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희생양들을 만든다. 우리아와 함께 가장 용감한 군인들이 그곳에 들어가 다 죽게 한다. 그렇게 해서 다윗의 명령에 순종한다.
6-9. "이 일을 악하게 보지 마라" — 사람의 눈과 하나님의 눈
요압이 보고를 했다.
- 목사님은 이 대목을 이렇게 풀어 주셨다. 다윗이 처음에는 화를 냈다. 우리아만 죽이라고 했는데 여러 명의 군사가 죽은 것을 보고 전략을 잘못 짰다고 화를 내다가, "우리아도 죽었습니다"라는 말을 듣자 말을 바꾼다.
- 25절에서 다윗은 전령에게 말한다.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전쟁 때 화살이 어디로 날아올지, 칼이 누구를 찌를지 모르는 것이니 우리아가 죽었다고, 우리아와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였던 충성된 군인들이 죽었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 문자적으로 옮기면 다윗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 일을 악하게 보지 마라." 그렇게 악한 일이 아니다. 전쟁 때는 사람이 죽는다. 그러니 악하게 보지 말라.
똑같은 표현이 27절에 하나님에 대해 나온다.
- 다윗이 간음한 죄를 회개하지 않고 의로운 우리아를 죽였다. 우리아만이 아니라 우리아와 함께 싸워 온 용사들이 함께 죽임을 당하게 했다. 그것을 보고도 "악한 것 아니다. 잘했다. 너무 염려하지 마라"고 말하는 다윗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셨다.
- 내 눈으로 보기에는 모든 것이 의로울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다르다.
-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안 보시는 것 같으나,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다 보고 계시고 선악 간에 판단하신다.
- 하루하루 살아갈 때 내가 생명의 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불쌍히 여기며 살리는 사람으로 살고 있는지, 하나님을 무시하고 이웃을 죽이고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살고 있는지 나는 모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꽃 같은 눈으로 나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보고 계신다.
6-10. 본문의 메시지 — 그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이다
"오늘 본문이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지금 타락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과거의 다윗
- 문자 그대로, 실제로 우리보다 훨씬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 우리보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체험을 훨씬 많이 한 사람이다.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다.
- 과거에 자기를 죽이려고 찾아다녔던 원수의 아들을 살리고, 위로하고, 그 원수의 가문을 완전히 회복시켜 준 사람이다.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경건한 사람이다.
지금의 다윗
- 그 사람이 변했다. 다른 사람의 부인인 줄 알면서 범했다.
- 그 죄를 덮으려고 남편을 죽였다.
- 남편을 죽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에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 죽였다.
- 다 죽이고 난 다음에 말한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나쁜 일 아니다."
"이 사람과 이 사람이 같은 사람입니까? 놀랍게도 같은 사람입니다." 과거의 믿음과 신앙, 경건하게 살았던 모습을 보면 지금 여기 나오는 사람이 과연 그 사람이 맞는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다.
6-11. 원인 — 하나님을 업신여김
하나님은 나단을 통해 다윗이 이렇게 심각한 죄에 빠진 이유를 사무엘하 12장 10절에서 말씀하신다. (회중과 함께 낭독)
"이제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아내로 삼았은즉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삼하 12:10)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의 본질을 지적하신 것이다. 다윗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마음이 들어갔다.
"업신여긴다"는 것은 무엇인가
- 어떤 중요한 행동이나 결정을 할 때 고려 사항으로 두지 않는 것이다.
- 예배당을 리모델링하거나 건축할 때, 새 교육관을 어떻게 지을지 정할 때 우리는 "어르신들을 생각해서, 영아들을 생각해서, 청년·대학생들을 생각해서 이런 것은 꼭 고려해서 이렇게 합시다" 하고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있다.
- 다윗이나 요압이 무엇을 결정할 때 "그것은 고려할 사항이 아니다. 생각할 거리도 안 된다.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여기는 것, 그것이 업신여기는 것이다.
한때 하나님을 자기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기의 모든 분노와 욕심과 잘못을 단번에 끊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성공과 부귀와 권력과 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는 자리에 이르는 동안, 그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은 고려할 필요가 없는 분, 어떤 행동을 할 때 생각할 가치가 없는 분으로 바뀐 것이다.
"왜 생명의 길을 떠나 죽음의 길을 걸으며 죽음의 행동을 합니까?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6-12. 예화 — 24억 원짜리 10센트 동전
말씀을 준비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셨다.
- 10년 전쯤 미국에서 희귀한 동전을 경매하는 경매인 존 파이겐바움(자막에는 '잔 파…갠바움', '파이겐파움'처럼 들림)의 이야기를 보셨다. "여러분 가운데 우리나라 옛날 동전, 옛날에 나온 10원짜리·500원짜리 동전을 수집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 이 사람이 1894년에 미국에서 만든 10센트짜리 동전을 구입한 일이 있다. 10센트 동전을 '다임(dime)'이라고 한다.
- 1달러가 지금 1,200원 정도이니 10센트면 120원쯤 되는 동전이다.
- "120원짜리를 내가 산다고 하면 얼마를 주겠습니까? 상상해 보십시오." 24억 원을 주고 구입했다. 190만 달러다.
- 목사님은 웃으며 덧붙이셨다. "제가 볼 때는 제정신이 좀… 돈을 이렇게 쓰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이 조금 이상해진 것 같아요." 24억이라는, 하나님께 받은 복이 있는데 그것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살리는 쪽에 쓸 수도 있는데 10센트짜리 동전을 사는 데 썼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
- 왜 그렇게 비싼가. 1894년에 미국 조폐국에서 이 10센트 동전을 딱 24개만 만들었다고 한다. 하도 이해가 안 되어서 자료를 찾아보셨다고 한다. 24개를 만들었는데 다 없어지고 10개 정도만 남았고, 그 가운데 한 개가 경매에 나와 24억 원에 팔린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 이 사람은 경매인이니 이 동전을 의뢰한 사람에게 전달해야 한다. 우편으로 보낼 수는 없다. 직접 들고 가서 전해 주어야 한다.
- 이 10센트짜리 동전을 들고 비행기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이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겠는가. 동전밖에 없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동전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가, 떨어뜨리지는 않았는가." 모든 관심을 동전에 쏟는다.
생명의 길을 걷는 신자
-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하신 일이 무엇일까"에 온 마음을 집중한다. 그 일에 하루를, 한 주간의 삶을 집중하며 살아간다. 그 사람이 생명의 길을 걷는 신자다. 초대교회가 그렇게 가르쳤다.
- "주일날 와서 예배드렸습니다. 아침에 성경 읽었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내 마음대로 살겠습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 동전을 운반하는 동안 모든 관심이 동전을 지키는 데 있듯이, 하루를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에 마음을 둔다.
- 지금 내가 있는 이 직장에서 상사가 부당한 것,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 불법한 것을 말할 때 하나님께 합당하게 어떻게 살아야 할까.
- 가정에서 남편을 대하고 아내를 대하고 자녀를 대할 때, 세상에서 살아갈 때 어떻게 해야 할까.
- 생명의 길을 걷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 속에서 이웃을 살리며 살아간다고 했는데, "그것을 내가 어떻게 살아 낼까"에 마음을 집중하며 사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6-13. 적용 ① — 하루를 무엇으로 시작하는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 하루를 시작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가. 교회가 오랫동안 큐티(QT)하자고, 성경을 읽고 가자고 해 왔다.
-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하는가.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는, 예수님 말씀대로 내 힘으로는 안 되고 뱀 같은 지혜와 비둘기 같은 순결함으로, 믿음으로 살아 내야 할 일을 엄청나게 많이 만난다. 그때마다 "하나님, 저에게 지혜를 주셔서 생명의 길을 걷는 사람, 이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 살 은혜를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도우심을 구하는 자리에서 살고 있는가.
- 그렇게 살아야 한다.
"목사님, 저는 매일 성경 안 읽고 그렇게 힘써 기도 안 해도 괜찮습니다." — "아니요."
- 다윗 같은 사람, 우리와 비교할 때 엄청나게 경건하고 거룩하고 하나님의 연단을 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그 마음속에서 멀어질 때, 하나님이 주신 축복 속에서 하나님을 놓치게 될 때 여지없이 유혹과 시험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
- 그러므로 아침을 시작할 때 구하라. "하나님이 오늘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듣는 귀를 주시고, 성령님 깨닫는 마음을 주십시오."
- 그리고 하나님이 이것을 하라고 하실 때 "이것을 하기에는 외압이 너무 큽니다. 잃어버릴 것이 너무 많습니다. 손해 볼 것이 너무 많습니다"라는 세상의 유혹과 도전이 온다. 그때 "하나님, 하나님의 도우심과 살아 계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뚫고 나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하는 기도와 은혜의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라.
6-14. 적용 ② — 주일 예배가 삶의 중심에 들어온다
믿음 안에서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인에게 물어보면 주일에 대한, 예배에 대한 의식이 바뀌어 있다.
- 우리는 이 세상을 다 살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 내가 살아온 인생을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심판하실 것을 안다.
-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는 이 믿음이 성숙하면 이렇게 바뀐다. "내가 이번 한 주간의 삶을 마치면 오는 주일에 하나님 앞, 예배의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 "내가 예배드리는 자리에 들어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내가 생명의 길을 걸었는지 죽음의 길을 걸었는지 판단하시고 나의 예배를 받으실 것이다."
- 아벨과 같이 내가 있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예배자로 살았다면 하나님은 나의 예배를 받으실 것이다.
- 그러나 예배의 자리에 왔으나 지난 일주일의 삶이 요압처럼, 다윗처럼 내 욕심을 따라 죄악된 길을 걷다가 주일에 온 것이라면, 하나님이 가인의 예배를 거절하셨듯이 내 예배를 받지 않으실 것이다.
- 믿음이 성장한다는 것은 이렇게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내 삶의 중심에 들어오게 된다.
-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주일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예배드리는 나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실까"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
(이어지는 에녹 이야기와 마지막 권면은 3장 '결론'에 정리했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사건의 흐름 (다윗 통치 중반, 주전 약 1000년 이후)
| 순서 | 사건 | 성경 |
|---|---|---|
| 앞선 일 |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사울의 밭을 돌려주고 왕의 상에서 먹게 함. | 삼하 9장 |
| 암몬 전쟁 | 암몬이 다윗의 사절을 모욕하고 아람과 연합. 요압이 앞뒤로 적을 맞아 싸워 이김. | 삼하 10장 |
| 범죄 | 군대가 랍바를 에워싼 동안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 밧세바를 범함. 임신 소식. | 삼하 11:1-5 |
| 은폐 시도 | 우리아를 불러 집으로 보내려 했으나, 우리아는 "언약궤와 군대가 들에 있는데 어찌 내가 집에 가겠느냐"며 가지 않음. 취하게 해도 가지 않음. | 삼하 11:6-13 |
| 본문 | 우리아 손에 편지를 들려 보냄. 우리아와 군사들의 죽음. "걱정하지 말라." | 삼하 11:14-25 |
| 그 뒤 | 밧세바를 아내로 삼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 | 삼하 11:26-12:15 |
- 설교에서 "우리아가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11:6-13의 일이다.
- 설교에서 "요압이 간절히 기도했다"고 하신 장면은 사무엘하 10:9-12이다. 성경에는 요압이 동생 아비새에게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열두 사도의 가르침」(디다케)
- 헬라어 '디다케'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신약 성경에 들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교회의 생활과 예배를 보여 주는 가장 오래된 문서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기록 연대는 주후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초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학자마다 조금씩 다르다.
- 오랫동안 이름만 전해지다가 1873년 한 헬라어 사본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 앞부분(1~6장)이 설교에서 읽은 '두 가지 길'이고, 뒤에는 세례, 금식, 기도, 성찬, 교회 직분에 관한 가르침이 이어진다. 설교에서 읽은 생명의 길 대목은 1장, 죽음의 길 대목은 5장에 해당한다.
- '두 가지 길'은 성경에 뿌리를 둔 표현이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시편 1편의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예수님의 좁은 문과 넓은 문(마 7:13-14)이 그것이다.
1894년 10센트 동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조폐국에서 1894년에 만든 10센트 은화로, 24개만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9개 안팎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중 하나가 2007년에 약 190만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보도가 있으며, 설교의 예화는 이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예루살렘 | 다윗의 왕궁이 있던 수도. 다윗은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삼하 11:1). |
| 랍바 | 암몬의 수도. 요압의 군대가 에워싸고 있던 성으로, 우리아가 죽은 곳이다.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 자리다. 예루살렘에서 요단강 건너 동쪽으로 직선거리 약 70km다. |
| 암몬 | 요단강 동쪽에 살던 민족. 롯의 후손으로 전해진다(창 19:38). |
| 아람 | 이스라엘 북동쪽, 오늘날 시리아 지역의 여러 왕국. 암몬이 돈을 주고 원군으로 불렀다(삼하 10:6). |
| 데벳스 | 사사 시대에 아비멜렉이 성을 치다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아 죽은 곳(삿 9:50-53). 요압이 전령에게 일러 준 말 속에 나온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다윗 | 이스라엘의 둘째 왕. "내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 행 13:22)이라 불렸다.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두 번이나 그를 살려 주었다(삼상 24장, 26장). |
| 요압 | 다윗의 군대 장관.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이므로 다윗의 조카다(대상 2:13-16). 설교에서 요압이 다윗을 "삼촌"이라 부르는 것으로 표현하신 이유다. |
| 우리아 | 헷 사람. 이방 출신이지만 다윗의 정예 용사 명단 맨 끝에 이름이 올라 있다(삼하 23:39). 이름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라는 뜻이다. |
| 밧세바 | 엘리암의 딸, 우리아의 아내(삼하 11:3). 훗날 솔로몬의 어머니가 된다. |
| 나단 | 선지자.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 비유로 다윗을 책망했다(삼하 12:1-14). |
| 요나단 | 사울 왕의 아들, 다윗의 친구. 아버지에게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말했다(삼상 19:4-5). |
| 므비보셋 | 요나단의 아들, 사울의 손자. 두 발을 저는 사람으로, 다윗이 그를 찾아 은혜를 베풀었다(삼하 9장). 설교의 "원수의 가문을 회복시켜 주었다"는 대목이 이 일이다. |
| 아비멜렉 | 사사 기드온(여룹바알)의 아들. 본문의 '여룹베셋'은 여룹바알을 달리 적은 이름이다. |
| 에녹 | 아담의 7대손.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2-24). |
| 아벨과 가인 | 아담의 두 아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창 4:3-5). |
| 사도 요한 |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오래 산 것으로 전해지며, 1세기 말까지 에베소에서 활동했다는 전승이 있다. |
7-4. 문화
삼십 용사 — 다윗에게는 '세 용사'와 '삼십 용사'로 불리는 정예 전사들이 있었다(삼하 23:8-39). 명단에는 모두 37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우리아는 이름 없는 병사가 아니라 왕이 잘 아는 측근 용사였다.
편지를 든 사람 — 왕의 편지는 봉하여 믿을 만한 사람 손에 들려 보냈다. 우리아는 자기 사형 명령서를 직접 들고 간 셈인데, 다윗은 그가 편지를 뜯어 보지 않을 만큼 충직한 사람임을 알았기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성벽 가까이 가지 않는 것 — 성을 공격할 때 성벽에 바짝 붙으면 위에서 쏘는 화살과 던지는 돌에 당하기 쉽다. 아비멜렉이 맷돌에 맞아 죽은 일은 군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교훈이었다. 요압은 이 무리한 접근을 일부러 감행했고, 그래서 왕이 책망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전령에게 답을 일러 준 것이다(11:20-21).
간음에 대한 율법 — 율법은 간음한 남녀를 모두 죽이라고 했다(레 20:10, 신 22:22). 다윗이 임신을 감추려 한 배경이다.
"강간"이라는 표현 — 본문은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동침했다고 적는다(11:4). 왕이 부르는데 거절하기 어려웠을 처지와, 나단의 비유에서 밧세바가 빼앗긴 '암양 새끼'로 그려지고 책임을 오직 다윗에게 묻는 점을 근거로 이를 권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설교는 이 해석을 따른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이신칭의(以信稱義) | 사람이 자기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교리(롬 3:28). 설교는 이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교리에 동의하는 것으로만 좁히지 말고 '걸어가는 길'로 보라는 뜻이다. |
| 회개(悔改) |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성경은 회개 자체를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말한다("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행 11:18, "혹 하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딤후 2:25). 설교의 "회개의 은혜를 구하라"가 이 뜻이다. |
| 업신여기다 | 삼하 12:9-10. 하찮게 여기다, 멸시하다는 뜻의 히브리어 '바자'. 9절에서는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겼다", 10절에서는 "나를 업신여겼다"고 하신다. |
| "악하게 보지 말라" / "악하였더라" | 25절 "걱정하지 말라"는 히브리어로 "이 일이 네 눈에 악하게 보이지 않게 하라"이고, 27절은 "그 일이 여호와의 눈에 악하였다"이다. 같은 낱말을 써서 다윗의 눈과 하나님의 눈을 맞세운다. |
|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 삼상 13:14, 행 13:22.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
| 에스겔의 말씀 |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겔 18:24, 33:13도 같은 뜻). |
| 나무와 열매 |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마 7:16-20). |
| 좁은 길 |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 |
| 돌밭·가시밭·옥토 |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마 13:3-23). 같은 말씀을 듣고도 마음 밭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
| 우는 사자 |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
|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며 하신 말씀(마 10:16). |
| 불꽃 같은 눈 |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표현(계 1:14, 2:18).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신다는 뜻이다. |
| 심판대 |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
| 빛과 어둠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요일 1:5). 설교의 "제3의 길은 없다"와 이어진다. |
| 큐티(QT) | Quiet Time. 날마다 정한 시간에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경건 생활.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함께 읽은 구절은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열두 사도의 가르침」 낭독 부분은 자막이 여러 군데 깨져 있어("조조로"→저주로, "정효 끔 행"→정욕·음행, "성과 오른 심판의"→의로운 심판에, "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파악을 위해서"→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악을 위해서) 문맥과 디다케의 알려진 내용에 맞추어 다듬었습니다. 교회에서 실제로 읽은 번역문과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 동전 예화의 경매인 이름은 자막만으로 확정하기 어렵습니다(자막에는 '잔 파…갠바움', '파이겐파움'처럼 들림). 24억 원, 190만 달러, 24개 제작, 10개 정도 남음은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일반 자료에는 남은 것이 9개 안팎, 거래 시기가 2007년으로 나옵니다.
- 자막에 "15절", "17절"로 적힌 곳은 "이십오 절", "이십칠 절"을 잘못 끊어 받아 적은 것으로 보아 25절, 27절로 정리했습니다.
- 6-9의 "다윗이 처음에는 화를 냈다"는 설교에서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개역개정 본문에는 요압이 "왕이 노하시거든" 하고 미리 예상하는 말(20-21절)만 있고, 다윗이 실제로 화를 냈다는 문장은 없습니다. 다만 고대 헬라어 번역 성경(칠십인역)에는 다윗이 노하여 그 말을 했다는 내용이 덧붙어 있습니다.
- 6-10의 "원수의 아들"은 말씀하신 그대로이며, 성경에서 므비보셋은 사울의 손자(요나단의 아들)입니다. 같은 대목에서 사울이 다윗을 찾아다닌 기간을 말씀하신 듯한 부분은 자막이 분명하지 않아 옮기지 않았습니다.
- 6-6의 "요압이 간절히 기도했다"는 말씀하신 그대로이며, 사무엘하 10장에는 요압이 아비새에게 한 믿음의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7-1 참조).
- 설교 뒤 회중 기도 시간은 자막이 깨져 있어 옮기지 못했습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디다케의 기록 연대, 다윗 통치 연대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